사회/잡상

법을 보는 법

planet2 2009. 8. 27. 02:37

 이렇게 인간이 선악판단을 스스로 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며, 인간은 오직 야훼 하느님 말씀만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이 요구된다는 설정은 그 종교를 지탱하는 사활적 요구일 것이다.


(중략)


그런데 인간의 독립적인 선악판단 의지에 대해 오직 종교만이 이런 식으로 경고하고, 분노하고, 억합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사회 속 인간의 세속적 선악판단은 '정의'라고 불린다. 그 정의는 곧 법을 일컫는다. 그리고 국가는 이 법을 하느님과 같은 절대권력으로 지키고 있다. 어떤 국가든 국가는 '창세기'적 원리로 우리에게 국가와 동등한 자격으로 법적 정의를 가치판단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이를 무시하고 만약 우리가 진실을 말하는 뱀 혹은 이성의 '유혹'에 빠져 정의라는 가치판단에 관심을 갖고 국가와 동등한 자격으로 법을 바라보다 국가의 잘못된 법에 부끄러움을 느껴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신처럼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국가는 결코 이런 사태를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국가는 개인의 주체적인 시선으로 판단한 사적 정의, 즉 사적 선악판단에 분노하고 당장 우리를 사회라는 에덴동산에서 감옥으로 추방해 고통스런 삶을 살게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선악과를 따 먹은 이브와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물을 수밖에 없다. 국가의 법은 곧 정의인가? 실제로 그런가? 우리는 국가의 법은 곧 정의라고 맹목적으로 믿고 따라야 하는가?


김욱, "법을 보는 법 - 법치주의의 겉과 속", 개마고원, 2009, 43~44P

 
많은 사람들이 법과 절대적 진리를 동일시 한다. 참혹한 강력사건들 뿐만아니라, 특히 '불법파업', '불법시위' 등의 사안엔 사회질서를 파괴하려는 자들에게 관용없이 엄벌을 내릴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사람들은 동시에 법이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며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도구로 전락했다고 개탄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11조 1항이 진실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놈의 법"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못 한다고 답답해 하던 민주적 대통령 뿐만 아니라 법을 우습게 알던 독재자들 조차 완전한 무법자가 되지는 못하고 그 눈치를 봐야만 했던, 현실 속 우리 행동과 삶을 가장 강력하게 규제하는 법. 갈등이 벌어지면 너도 나도 "법대로 하라"고 큰소리를 떵떵치지만 그 복잡한 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법이라는 말만 들어도 골치가 아파오는 법.

우리는 이 말많고 탈많은 법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살펴보고 이해하고 대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법을 보는 법"을 읽으면 답은 모르겠지만 힌트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법이 만들어지고 개정되고 운영되는 과정에 관한 얘기, 즉 법의 역사와 철학을 문외한이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썼다. 결코 가벼울 수는 없는 내용을 유명한 영화들과 각종 사례를 통해 풀어 설명해 가볍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가치중립적이라기 보다는, 시각에 따라 약간 마르크스주의 편향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책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균형이 잡혀 있으며 입체적이다.

최근들어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이라서 감상평을 써보려 했지만 게으름과 내공부족으로 못쓰고 있었는데, 이런 아무 내용없는 글보다는 한윤형씨의 감상평 (법을 보는 법 : 훌륭한 교양도서이면서 훌륭한 에세이)을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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