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잡상

버스 지나기 전에 손 흔들기 - 1

planet2 2008. 4. 9. 22:02

 “노무현 대통령이 영화 ‘왕의 남자’로 유명해진 배우 이준기씨에게 “그렇게 자신감이 없느냐”고 물었다. 경제운용에는 분명히 심리적인 측면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자신감’으로 경제가 운용되는 거라면 ‘강성대국’을 주창한 북한은 이미 오래 전에 경제위기를 극복했을지도, 게다가 OECD에 가입하고 ‘선진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세계 4강’의 자신감만으로 경제운용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공격경영’은 개별기업에 적용하는 것이지, 국가를 대상으로 공격경영을 하는 경우는 세계 자본주의사에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우석훈,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녹색평론사, 2006]



한미 FTA 반대의견이 50%를 상회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협상 타결 이후 반대 여론은 급격히 위축됐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백만 민중’의 뜻을 모아 한미FTA를 무효화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무효화는 커녕 선거 쟁점으로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진보신당과 민노당은 한미 FTA 반대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역시 쟁점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FTA 타결 1년을 맞아 보수언론들이 연일 ‘조속한 국회비준’을 요구하는데도 반박논평 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이렇게 한 쪽에서 이 문제를 잊어가는 사이, 이명박의 방미 이후 보수세력의 압박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8대 국회에선 초반 통과가 확실해 보인다. 이렇게 흘러가도 괜찮은 것일까?

그동안 나는 평소의 성향 때문에 반대쪽으로 기울긴 했었지만 명확하게 ‘한미 FTA 반대’ 의견을 확립하지는 못했었다. 경제에 관해 쥐뿔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말들을 늘어놓으며 강압적으로 FTA를 추진하는 측의 ‘꿍꿍이’가 의심스럽고 불쾌했지만, 좌파 내부에서조차 “민생, 경제 문제를 지나치게 반미와 연계해 풀어나간다”고 비판 받는 FTA반대 범국본의 주장도 무턱대고 신뢰할 수 없었다. 우석훈의 책을 읽어봐도 감이 잡히지 않는 건 마찬가지. 경제에 무지했기 때문에 급박하게 오고 가는 주장들을 보며 ‘이게 무슨 뜻인가?’ 이해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이런 주제에 여기서 더 나아가 양쪽 의견을 두루 살핀 다음 ‘내 생각’을 세우는 건 불가능했다.

이렇게 제대로 알 수 없는 문제와 맞닥뜨리게 됐을 때엔 언행을 삼가고 피해가는 게 소모와 망신을 피하는 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해 말하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듯 하다. 입만 열면 아주 가볍게 ‘2메가’ 등에 비난을 퍼붓던 사람들도 한미 FTA에 관해서 만큼은 언급을 피하거나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쉽게 판단을 못하고 혼란스러워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황우석 사건과 한미 FTA는 이런 측면에서 닮은 꼴이라던 우석훈의 말이 일리 있다.

자, 그러면 나처럼 아는 것 없는 무지렁이는 FTA건 뭐건 잠자코 한쪽에 찌그러져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고 있어야 할까? 그럴리가. 관련분야 지식의 축적 정도로 사회적 문제에 관한 발언권을 따지게 되면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거의 모든 사안들에 관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 마냥 이런 식으로 나아가게 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회적 사안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궁금해야 할 필요도 없게 되고 결국 지배층이 결정한대로 순응하며 살 게 될 수도 있다. 이건 옳지 않다. 모든 사회적 이슈에 일일이 대응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지만 선거나 국가적 차원의 정책 같은 사회적 파장이 크고 선택이 필요한 사안들에 관해선 가급적 자기의견을 갖는 게 좋다. ‘경제’가 시대의 화두가 된 요즈음 미국이 우리사회에서 가지는 영향력을 생각할 때 그 미국과 경제통합을 추진한다는 한미 FTA는 외면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이 지적한 대로 사회적 문제에 관해 견해를 표명할 권리는 전문가에게만 있지 않다. 전문가들을 앞세운 지배세력 혹은 지배세력과 결탁한 전문가들이 대중을 기만했던 사례들을 생각해보자. 모른다는 것에 위축될 필요도 없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한계를 인정하고 함부로 넘겨짚는 걸 피하며 그 한계의 안에서 상식으로 살펴봐서 판단하면 된다.

그렇다면 이 말 많고 탈 많다는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협정의 전체적 내용과 논란이 되는 사안들을 요모조모 꼼꼼히 따져보는 게 바람직할 테지만, 설령 경제적 지식이 있다고 해도 하루하루 앞가림에 급급한 처지에 이 방대한 사안과 관련 쟁점들을 지속적으로 추적해 관련지식을 업데이트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건 포기. 나는 ‘먼저 시비를 건 쪽’의 말을 최대한 축약한 다음 그들의 주장이 타당성을 갖는지 살펴보고 한미 FTA에 관한 내 생각을 정립하기로 했다. 비전문가가 사회적 쟁점에 접근할 때 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상식과 계급적 입장에 기반해, 간략하게 한미 FTA에 관해 생각해보겠다. 논쟁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을 정리하는 동시에 나와 비슷한 정치적 입장을 지니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글을 쓴다.

비전문가가 슬쩍 살펴 본 한국 경제

정부는 한미 FTA를 추진해야 하는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한국은 수출을 해야만 살 수 있는데 FTA는 세계적 대세로 떠오르는 추세라서 여기에 끼지 못하면 수출 경쟁력이 하락하기 때문에. 둘째, “능동적인 시장개방과 자유화를 통해 국가 전반의 시스템을 선진화하고 경제체질을 강화하기 위해”.

FTA가 늘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FTA가 피할 수 없는 세계적 대세인지는 관점에 따라 결론이 다를 것 같다. 미국, 호주, 유럽 같은 역내 패권국가들. 멕시코와 캐나다 같은 나프타 체결국, 싱가폴 같은 전통적 자유무역국, 뚜렷하게 비교우위와 열위가 갈리는 칠레 같은 조금 특수한 경우의 나라들을 제외하면 다른 FTA 체결국들은 대단히 제한된 범위에서 타국과 FTA를 맺고 있다. 나는 FTA가 ‘세계적 대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FTA를 통해 ‘국가 선진화’를 한다는 건 정부의 기대일 뿐이지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니 뭐라 말할 가치를 못 느끼겠다. 정부측의 두 가지 핵심적 주장은 내겐 설득력이 없다.

좌우지간 정부는 ‘세계적 조류’에 동참하기만 하면 대한민국은 ‘고생 끝, 행복시작’이란다. 수출이 증가하고 투자가 늘어나 일자리가 늘고 빈부격차도 줄일 수 있단다. 마냥 좋기만 하다고 말하기는 민망했던지 농업분야엔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대책을 마련해 놨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을 거란다. 결국 정부 주장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수출만 잘되면 만사해결’이라는 것이다. 일단, 무역장벽이 제거되면 폭이 얼마가 될지는 몰라도 수출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수출이 증가하면 자동적으로 서민들의 생활도 좋아진다는 정부의 주장은 옳은 것일까?

※ 자료 : 통계청

다들 알다시피, 한국 경제는 박정희 정권의 중화학 공업 올인이 2차 오일쇼크를 만났던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심각한 위기를 겪긴 했지만 60년대 중반부터 고도성장을 지속했다. 급속 성장에 제동이 걸린 건 90년대 후반부터이다. 실질 GDP 평균 성장률은 71년부터 96년까지는 8% 정도였으나 97년부터 2006년까지는 4.5% 정도로 내려앉았다. 성장률이 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수출이 부진해졌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노동소득분배율 - 전체 국민소득 중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 노동소득 / 총소득]
※ 자료 : 통계청

7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GDP대비 30% 안팎의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수출은 외환위기 이후 극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경제 성장률은 이전 시기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정부와 ‘경제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수출이 증가하고 경제의 개방이 더 많이 이루어진 90년대 후반부터 한국 경제는 더 높게 성장하고 사람들의 '삶의 질'은 과거에 비해 훨씬 좋아졌어야 마땅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수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낮았던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 경제 사정은 어땠을까?

87년부터 96년까지의 평균 성장률은 8.4%. 다른 기간에 비해 낮지 않다. 노동소득 분배율은 이 기간에 꾸준히 향상되어 90년대 중반에 정점을 찍었다.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요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던 70년대 후반부터 개선되었던 노동소득 분배율은 87년의 노동자 대투쟁 이후 다시 한 번 크게 개선되었고 9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향상되었다. 한국에 중산층이 등장했던 건 이 무렵이다. 집값은 안정되고 노동소득은 증대되고 사교육 걱정은 없었던 이 때 서민들은 본격적으로 ‘마이 카’와 내 집 장만을 시작했다.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다'는 훈계까지 들을 정도로 소비도 증가했다. 그러나 97년 이후 고용의 질은 악화되고 이전까지 꾸준히 우상향하던 빈부격차와 노동소득 분배율의 개선추세선도 꺾여버렸다. 수출은 증가했지만 중산층은 붕괴됐다.

※ 자료 : 통계청

[참조기사 - 서울 신문 2007.06.01]


[참조기사 – 경향신문 2007.11.02]

[참조기사 –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2008.01.31]


90년대 후반 이후 수출이 급증하면서 몇 가지가 함께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기업의 이익과 상류층의 소득. 그리고 빈부격차, 비정규직, 빈곤층, 자료에 나오지 않는 스트레스 등등. 자살률 마저 OECD 최고 수준으로 급증했다.

[참조기사 – 한겨레21 2007.12.27]


수출이 증가하는데도 경제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 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외경제 의존도가 높고 경제에서 IT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싱가폴과 대만도 2000년대 들어 성장률의 급격한 하락, 고용-소비 부진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IT 산업의 성장은 다른 부문에 비해 내수와 고용에 미치는 효과가 낮거니와 고용불안과 소득 양극화가 내수의 기반을 파괴해 대외여건 악화의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게 되었고 때문에 경제의 불안정성이 증대되어 이런 결과를 빚었다고 한다.


[참조기사 - 조선일보 2006.10.27]



지금의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내수기반이 붕괴되어 불안정성이 심해진 한국의 경제 구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보수언론에도 지나치게 높은 대외의존도를 걱정하며 경제 구조의 다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실리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세계적 경제대국이 된 한국은 경제의 환경이 달라진 21세기에도 여전히 수출에만 올인해야 하는 것일까? 앞으로도 계속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정신하에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살 놈은 살고 죽을 놈은 죽는’ 체제로 나아가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이상의 자료들만 훑어보고선 ‘수출이 증가했더니 살기 나빠졌다’고 단정짓는다면 그것은 대단히 단선적인 생각일 것이다. 수출 증대는 한국 경제의 동인이었고 활력을 불어넣었던 면이 분명히 있다. 다만 90년대부터 우리가 살면서 피부로 겪어왔던 일들과 참고자료들을 돌아보면 수출 증대는 만사형통의 해법이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히 알 수 있다. 수출이 상대적으로 정체돼도 분배가 개선되고 집값과 사교육 등의 문제만 없다면 서민들의 생활은 오히려 지금보다 나아질 가능성도 있다.

무역을 전면부정하거나 보호무역을 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과도한 수출 집착은 오히려 우리 사회 다수의 살 길을 막아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회 > 잡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하준 논지의 요약  (0) 2009.04.07
신자유주의 메모  (0) 2009.02.15
신용위기 메모  (0) 2008.09.01
버스 지나기 전에 손 흔들기 - 2  (0) 2008.05.02
아파트 공화국  (0) 2007.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