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역사

프랜시스 윈의 "자본론 이펙트" 머리말 : 미지의 걸작

planet2 2014. 8. 17. 00:53

1867년 2월,『자본론(Das Kapital)』제1권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기 바로 얼마 전, 카를 마르크스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에게 발자크의 작품미지의 걸작(Le Chef-d'oeuvre inconnu)』을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는 이 소설 자체가 또한 걸작이라면서 "최고로 유쾌한 역설들이 그득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오늘날 우리는,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권고를 주의 깊게 듣고 이 책을 읽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만일 그랬다면 그런 역설들은 여기저기서 발견했을지 모르나, 마르크스가 그 책을 그렇게까지 재미있다고 여긴 것에는 조금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미지의 걸작』 이라는 작품은 프랭오페르라는 어느 대단한 화가의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그는 이 이야기에서, 10년 동안 단 하나의 초상화를 가지고 그리고 또 그리기를 되풀이한 뒤 "현실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냄으로써" 화단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려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마침내 그림이 완성된 다음 동료 화가인 푸생과 포르뷔가 작품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도록 했는데, 이들은 그림을 보자마자 기겁을 했다. 캔버스에는 여러 가지 형태와 색이, 혼란스럽게 쏟아지는 눈보라처럼 마구잡이로 겹치고 겹친 상태로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동료들의 반응을 잘못 이해한 프랭오페르는 이렇게 말했다. "아, 이처럼 완벽한 작품이리라고는 미처 예상을 하지 못했구먼!" 그러나 그는 푸생이 포르뷔에게 속삭이는 것을 엿듣게 되었다. 압축해서 말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저 친구는 자기가 그린 그림에 대해 뭐가 진실인지 반드시 알아야만 해. 초상화에 하도 덧칠을 해서 그림이라고 볼 만한 건, 아무것도 없잖아." 자신을 모욕하는 것만 같은 이런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프랭오페르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발자크의 작품 원문은 이러했다. .


"아니, 내 캔버스에 아무것도 없다고?" 프랭오페르는 동료 화가 두 사람과 자신의 작품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프랭오페르, 대체 캔버스에다 뭘 어떻게 해놓은 건가요?"라며, 포르뷔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푸생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질문에, 프랭오페르는 자신보다 나이가 젊은 포르뷔의 팔을 거칠게 잡으면서 욕을 해댔다. "아니,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이 천한 광대, 종놈의 자식, 사악한 놈, 비열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럼 넌 여기 왜 온 거야? 이 빌어먹을 포르뷔 녀석아." 그리고는 포르뷔보다는 연장자인 푸생 쪽으로 돌아서서 분을 터뜨렸다. "어떻게 자네가 나를 이렇게 조롱할 수 있는가? 대답 좀 해보라고. 나는 자네 친구 아닌가? 뭐라고 말 좀 해봐. 내가 정말 그림을 망쳤다는 건가?"


 포르뷔는 주저했다. 그는 뭐라고 감히 말을 꺼내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창백해진 노인 프랭오페르의 얼굴에 드리워진 고뇌가 그의 가슴을 터지게 할 것만 같아, 마침내 그는 캔버스를 가리키며 "제발 이것 좀 보세요"라고 간신히 말했다. 프랭오페르는 그 말에 자신의 작품을 응시하다가 비틀거렸다. "아, 이런 정말 아무것도 없군. 아무것도. 나는 이걸 지난 10년동안이나 그려왔단 말인가!"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두 화가가 자신의 화실에서 빠져나가자 프랭오페르는 자신의 모든 작품을 불태우고 자살하고 만다.


마르크스의 사위인 폴 라파르그에 따르면, 발자크의 이 작품은 "마르크스에게 대단한 인상을 남겼다. 이 이야기는 부분적으로, 다름 아닌 마르크스 자신의 느낌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르크스는 아직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자기 자신의 걸작을 완성하기 위해 오랫동안 힘들게 애를 써왔다. 시간이 너무 걸리기도 했지만, 그것은 걸작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걸린 기나긴 준비 기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러는 중에 하도 최종 작품이 나오지 않자 결과를 기다리던 이들은 작업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는지 묻곤 했다. 그러면 그의 대답은 마치 소설에 나오는 프랭오페르와 똑 닮아 있엇던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늘 이런 식으로 대꾸했다.


"아, 아직은 아니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뭔가 마지막으로 추가해야 할 것들이 여전히 있단 말일세. 어제 저녁만 해도 나는 다 되었다고 여겼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까 내가 실수 하나를 발견했거든." 책을 낼 날짜가 한참이나 지나버린 1846년 초, 마르크스는 독일의 출판사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내용과 문체를 모두 다시 수정하기 전까지는 책을 출판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입장에서, 6개월 전에 쓴 것을 그대로 놔두고 출간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고 나서 무려 12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이 걸작은 완성되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변명했다. "일의 진척이 상당히 늦어지고 있다. 지난 수 년간 혼신을 다해온 연구를 막 최종 마무리하려고 하면, 이내 새로운 점들이 드러나고 그것을 또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할 정도의 완벽주의자라고 할 그는 그가 그리는 그림에 계속해서 새로운 색조를 입히려 들었다. 그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영원한 작업인 셈이었다. 마르크스는 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중간에 수학을 공부하고 천체의 운행에 대해 학습하기도 했으며 러시아어를 독학해서 러시아의 토지 제도를 파악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발자크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프랭오페르의 말을 또다시 인용하자면 이런 식이 된다. "아, 이런 내 작품이 다 완성되었다고 한순간 생각했었는데, 몇 군데 세밀하게 표현되어야 할 부분에 문제가 있던 것이 틀림없어. 뭔가 미심쩍은 것을 완전히 고치기 전까지는 마음이 편치 않을 것만 같아. 그래서 나는 터키, 그리스 그리고 아시아 여행을 하기로 했지. 그런 곳에 가서 여러 가지 형식으로 표현되고 있는 자연과 내 그림을 비교하면서 좀 더 확실한 모델을 찾아볼 작정이네."


마르크스는 왜, 그의 최고로 위대한 작품을 마침내 대중들에게 드러내놓고 검증을 받으려고 준비하는 바로 그 순간에 발자크의 작품을 떠올리게 되었을까? 그도 그 소설의 주인공처럼 헛된 노력을 기울인 나머지 결국에는 "현실에 대한 완벽한 재현"이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사태로 끝날까봐 두려워했던 것일까? 분명 그는 어떤 우려를 했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지독한 자기 확신과 괴로울 정도로 멈추지 않는 자기 의심이라는 두 극단의 성격이 흥미롭게 결합되어 있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이런 우려들을 염두에 두고, "내가 짐작하는 바로는,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여기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로써 스스로 그에 대해 생각해보려 할 것이다"라고 서문에 적었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발자크의 소설의 주인공과 자신을 일치시켰다는 사실에서 가장 크게 놀라게 되는 것은, 프랭오페르가 정치경제학자이거나 철학자 또는 역사학자나 논쟁가가 아니라 '예술가'라는 점이다. 발자크의미지의 걸작』에 마르크스가 가득 차 있다고 한 "유쾌한 역설들"에서 최고의 대목은 무엇일까? 그것은 미국 작가 마셜 버만이 주목했던 바대로이다. 발자크가 프랭오페르의 그림에 대해 묘사한 것은 다름 아닌 20세기 추상화에 대한 완벽한 표현이라는 점이다. 사실 발자크 자신이야 이에 대해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마셜 버만은 바로 그 때문에 더더욱 이 작품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울림은 깊어진다고 말한다. 마셜 버만의 말을 들어보자. "한 시대가 단지 혼란과 불일치만을 보게 되는 어떤 것에 대해, 그 다음 시대는 거꾸로 그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마르크스의 후기작들은 보다 완벽하게 구성된 19세기의 작품들로서는 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우리 시대와 교감하고 있다. 그의 저서들은 그 시대의 한계에 갇혀 있지 않고 다음 세기를 향해 열려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의『자본론』은, 그가 살았던 세기에는 완성된 작품이라고 여겨지던 것들이 그어놓은 경계선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의 저서는 우리 시대의 논의 안으로 들어왔다. 마르크스의『자본론』은 과거와 연속성을 가지지 않은 근대와 이어져 있다. 그 이전과는 다른 변화를 그 안에 이미 담고 있는 것이다." 프랭오페르처럼 마르크스는 현대적 의미의 '전위작가'였다.『공산당 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에서 마르크스가 시대의 단절과 혼란에 대해 쓴 유명한 구절인 "단단하게 고체가 되어 있던 모든 것들이 녹아서 대기 속으로 흩어지고 말았다"는 훗날 T.S. 엘리엇이나 예이츠가 묘사한 공허해진 인간과 비현실적인 도시를 앞서 예견한 셈이었다. 마르크스가『자본론』을 쓸 무렵, 그는 기존의 전통적인 산문에서 벗어나 급진적인 문학적 양식을 향해 자신을 밀고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신화에 담긴 목소리와 문학에서의 인용문을 나란히 대조하고, 공장 감독관의 보고서와 민간 전래 동화를 함께 살펴나갔다. 이는 마르크스 이후의 시대에 등장한 에즈라 파운드의 장편시 「칸토스」나 엘리엇의「황무지」가 사용한 방식이었다.『자본론』은 표현주의 음악의 창시자 쇤베르크처럼 당대의 시대와는 불일치했으며, 카프카처럼 동시대인들에게는 악몽으로 다가왔다.


 카를 마르크스는 스스로를 창조적인 예술가, 변증법의 시인으로 생각했다. 1865년 7월 그가 엥겔스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쓴 책에 대해 엥겔스 자네에게 한 가지 분명한 진실을 말해주지. 이 책에 그 어떤 결점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유익한 점은 이것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는 사실이네." 마르크스가 인간의 물질적 동기나 이해관계에 대해 통찰력을 구한 것은 철학자나 정치 논평가들보다는 시인과 소설가들이었다. 1868년 12월에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는 발자크의 또 다른 작품인『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Jounal d'un cure de campagne)』에서 한 대목을 뽑아 인용하고 있다. 그는, 실제로 공장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엥겔스가 자신의 실천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 소설의 대목이 현실과 맞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보수적이고 왕당파적 입장에 서 있는 발자크가 마르크스의 마음을 끄는 문학적 영웅일 리는 없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위대한 작가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편견을 넘어서는, 사회 현실에 대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고 늘 주장했다.) 마르크스가 통상적인 경제학 논문을 쓰고자 했다면 문학보다는 정치나 경제 논문을 활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야심찬 목표는 그 이상을 넘어서는 담대한 것이었다. 마셜 버만은『자본론』의 저자인 마르크스가 "19세기의 위대하고도 고뇌에 넘치는 거인들 가운데 한 명"이라고 평했다. 그에 따르면, 이 "거인들"이란 베토벤, 고야,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입센, 니체, 그리고 반 고흐 등으로 이들은 그들 자신을 미칠 지경으로까지 몰아갔던 인물들이며 그럼으로써 우리를 열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바로 이들의 고뇌가, 우리가 지금 의지하며 사는 정신적 자산을 분출시켜놓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카를 마르크스를 위대한 작가와 예술가의 반열에 포함시키려고 들겠는가? 탈근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도,『자본론』에 담긴 토막토막 끊겨 있는 이야기들이나 또는 지난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내용들은 많은 독자들에게 제대로 된 형식이 없다거나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자본론』의 탄생과 운명에 대해 쓴 이 책은, 최소한 얼마간의 독자들이라도『자본론』을 다시 대하도록 설득하고자 한다. 그것이 이 책의 우선적인 목적이다. 가령 베토벤, 고야 또는 톨스토이에 대해 보다 깊이 알기 위해 치열하게 애를 쓰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자본론』을 읽으면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울 수'있어야 한다. 그것은『자본론』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오늘날 우리의 삶을 아직도 지배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마셜 버만이 언급했다시피, "자본이 여전히 생존해 있는데, 그에 대해 다룬『자본론』이 어떻게 수명을 다할 수 있겠는가?"


 마르크스는 사실 자신의 위대한 저작을 모두 끝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이것은 어느 모로 보나 가장 현실적으로 맞는 평가이다.『자본론』제1권만 마르크스가 살아있는 동안에 출간되었을 뿐이며, 나머지『자본론』의 후속편들은 그가 죽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그것도 마르크스의 서재에세 발견한 그가 남긴 메모와 연구 초고들을 기초로 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의 저작은 자본주의 체제와 마찬가지로 결말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모든 것에 대해 열려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그의『자본론』은 유연하고 탄력적인 개성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하건대 마르크스는 그야말로, 고뇌에 찬 위대한 거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걸작『자본론』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마르크스의 고뇌와 영감을 가져온 그 기원을 추적해보아야 한다.


프랜시스 윈, "자본론 이펙트", 김민웅 옮김, 세종서적, 2014

Francis Wheen, MARX'S DAS KAPITAL : A Biography,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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