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역사

책 두 권, 메모

planet2 2010. 3. 5. 05:08

1. 노무현, 성공과 좌절, 학고재, 2009


퇴임 직전인 2007년 후반부터 서거 직전인 2009년 4월까지 전대통령 노무현의 글과 구술을 모아 엮은 책. 그가 쓰고자 했던 회고록의 구상을 담은 메모와 홈페이지의 글, 간략한 일대기와 집권 후기의 정권 홍보성 평가가 담겨 있다. 대부분 언론 보도나 지지자들의 글을 통해 접했던 내용이라서 시사에 관심을 두고 있던 사람이라면 굳이 사서 읽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읽어보니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엔 가장 양심적이었고 양심적이고자 노력했으며, 그래서 부끄러움을 알았고 지적훈련도 게을리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무엇을 성공했고 무엇에 좌절했는지,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에 관한 반성적 성찰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계 정치인들은 '노무현 정신'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쓰던데 그 실체는 의문이다. 정신이나 사상적 체계는 실천과 평가 그리고 반성을 통해 구축되는데 그러기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없었다.

 나의 실패를 진보의 좌절, 민주주의의 좌절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사고는 역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과학도 과학이라면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따져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영웅사관은 넘어서야 한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갈 길을 가야한다. 몽땅 덮어씌우는 태도도 옳은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것도 극복해야 할 자세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할 일이 있고, 역사는 자기의 길이 있다. 또 정치의 성패가 도덕성 하나에 의지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하나에 매달려서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은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탐욕으로 탐욕을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17쪽)


책을 읽어보면 2007년엔 '실패'는 언론의 공세일뿐이라고 주장하며, "나는 잘못한 거 없다. 경제와 정치 모두 많이 좋아졌고 더 좋아질 거"라고 항변하는데 2009년엔 처절할 정도로 실패를 자인한다. 저 글은 2009년에 쓴 것이다. 어느 쪽이 진심일까? 양쪽 모두일 거라는 생각이다. 2007년엔 대선을 코앞에 둔 현직대통령이었으니 자화자찬의 말을 떠벌릴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고 2009년엔 결코 그럴 수 없는 입장이었던 것도 생각해야 한다. 저 글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유시민을 위시한 지지자들도 그럴까?

 그런 현실이니, 앞과 뒤의 차이가 크게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외환위기 탓도,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탓도 아니고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조류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모든 나라가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새로운 정책을 개발하면서 대응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 참여정부 5년 내내 민생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초반기에는 민생이 아주 나빴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습니다. 후반부에 들어서는 많이 좋아진 것이 사실이고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것입니다. 경제는 정책을 투입해서 효과가 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참여정부가 노력한 결과는 앞으로 2~3년 동안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이 대목과 관련해서 한마디 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양극화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변명하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점은 사실로서 꼭 이야기해두고 싶습니다. 양극화는 세계가 부닥쳐 있는 문제이고 또 세계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188~189쪽)

 
"양극화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바로 그 현실 때문에 그에게 투표했었다. 바로 그 세계적 조류가 내 삶을 위협하고 있는데, 조류를 뒤집는 건 불가능하다고 해도 충격을 완화해 줄 방파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를 지지했다. 이매진과 상록수를 부르며 자갈치 아지매와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호소하는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을 이유를 나는 찾을 수 없었다. 비정규직의 눈물대신 황우석의 눈물을 닦아주는 모습을 보고 뒤돌아섰지만 그 전까지는 그를 무척 좋아했었다.

그런데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그의 대응은 무엇이었나. 비정규직법과 한미 FTA는 양극화 해결에 기여할 정책인가? 그는 케인즈와 히틀러를 대비해 정치인은 학자보다 먼저 세상을 읽고 과학적 실천을 해야다고 주장하며 한미 FTA를 정당화 한다. 물론 "교조적 이론에 매몰돼 흘러간 노래만 부르는" 좌파 비난을 곁들여서.

 개방전략의 성공 가능성은 아무리 열심히 연구하고 분석해도, 흔히 말하는 시뮬레이션을 해봐도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습니다. 미래가 불확실한 경우에 뛰어들 것인가, 회피할 것인가? 세계 경제가 이렇게 운동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FTA를 회피해도 함께 갈 수 있는 것인가? 낙오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불확실하지만 뛰어들어야 적어도 낙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 일찍 뛰어들면 앞서갈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 국민들의 역량에 대한 믿음입니다. 버거운 사태가 벌어졌을 때, 또는 지금부터 변화를 해야 하는 과제가 던져졌을 때 우리 국민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고 할 만큼 적응력이 높습니다. 감당해갈 수 있다는 믿음, 우리 국민들의 역량에 대한 믿음, 그것이 FTA를 결정하게 된 중요한 이유입니다. 아무리 앞서가고 싶은 지도자가 있어도 국민들이 이 새로운 상황이나 혼란스러운 변화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결단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국민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보면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 국민들에 대해 그만한 믿음은 가지고 있습니다. (230~231쪽)

 
불확실하지만 뛰어들면 손해는 안 본다는 믿음, 국민의 역량에 대한 믿음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과연 얼마나 '과학적'인가?

"세계적 조류"와 "권력을 소유한 시장" 그리고 의석이나 집권여부와는 상관없는 여전히 강력한 패권적 보수주의 세력의 공격. 이 틈바구니에서 그가 뜻을 펼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비판자들도 이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책임지지 않으며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거리기만 하는 허수아비를 지지할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2. 박종현, "케인즈 & 하이에크 :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 김영사, 2008

제목 그대로 케인즈와 하이에크의 경제에 관한 철학과 정책을 비교해 보여주는 책. 저자는 명백히 케인즈주의에 기울어져 있고 그래서 이따금 하이에크를 비판하지만 공정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 문외한도 알기 쉽게 그들 사상을 요약하고 대비시켜 설명한다. 그런데 내용이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또 케인즈와 하이에크의 대립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나온 내용의 상당부분은 인터넷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이미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책 맨앞에 실려있는 '지식인 마을 지도'는 손발이 오글오글...

초심자용 책이니 당연하게도 두 거물의 사상과 대립에 관한 설명의 깊이는 얕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부록으로 실린 내용들이 더 재밌었다. 일본의 장기불황을 주제로 케인즈, 하이에크, 마르크스, 슘페터, 폴 크루그먼이 가상 토론을 벌이는 것이 첫 번째. 각 사상가들의 세계관과 이론이 현실의 구체적 사건을 통해 드러나니 사상을 교과서적으로 구분하고 나열해서 설명하는 것보다는 훨씬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자료와 주석을 더 풍부하게 보강해서 이 부분을 따로 하나의 책으로 엮어내도 괜찮겠다.

두 번째는 케인즈(주의자)의 입장에서 바라 본 경제이슈에 관한 내용이다. 여기엔 한미 FTA도 포함되어 있다. 케인즈라면 한미 FTA를 어떻게 생각할까? 경청해 볼 필요는 있지 않겠는가?

 케인즈가 한미 FTA를 반대하는 이유



전략


한국은 전통적으로 자원이 부족하고 인구 또한 많지 않아 수요의 많은 부분을 대외 수요, 곧 수출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이다. 선진국의 경우 국민소득이 2만 달러였을 때의 국내총생산 대비 수출 비중이 15.4퍼센트 였던 반면, 우리는 2006년 현재 57.8퍼센트나 되었다. 수출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그렇다면 대외 의존도가 이렇게나 높은 나라에서 새로운 수출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시도에 대해 그토록 격렬한 반대가 있었고, 또 앞으로도 계속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미 FTA가 단순히 상품 교역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농산물 및 서비스 시장, 지적 재산권, 투자국 정부에 대한 외국 기업의 소송, 의약 제도 개혁 등을 포괄하는 대단히 높은 수준의 '개방'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개방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한국의 여러 제도와 규범이 미국식으로 바뀔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번 한미 FTA는 단순한 무역 자유화가 아니라 미국과의 사실상 '경제 통합'을 의미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부를 비롯한 찬성 진영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 두 진영 사이에는 미국식 경제 시스템으로 옮겨 가는 것에 대한 가치판단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반대론자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우리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찬성론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고 '축복'이 된다는 것이다.


케인즈가 살아 있다면, 이 한미 FTA를 어떻게 평가할까? 케인즈는 다음과 같은 복합적인 이유에서 한미 FTA를 반대하는 편에 섰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케인즈는 대부분의 영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유 무역을 존중하면서 자라왔다. 영국은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었으며, 이것이 자유 무역에 대한 믿음을 정당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 영국인들에게 자유 무역은 합리적인 교양인이라면 의심할 수 없는 당연한 경제적 교의였을 뿐 아니라 일종의 도덕 법칙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유 무역에 대한 케인즈의 생각은 바뀐다. 자유 무역이 여러 미덕을 갖는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것이 가져올 경제적 이익과 비경제적 불이익의 득실을 따져야만 자유 무역을 더욱 확대할 것인가 아니면 축소할 것인가에 대한 제대로 된 판단이 가능하다는 게 1920년대 이후 케인즈가 품게 된 입장이다. 케인즈는 국가들 사이에 산업화나 기술 수준의 차이가 클수록 자유 무역, 곧 국제적 분업을 통해 얻는 경제적 이익 또한 커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본의 국제적 이동성이 높아질수록 국민 경제의 안정성은 약화되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들 또한 금전적 가치와 수익성의 논리에 휘둘리게 되는 한편, 정부의 정책 수행 능력도 현저하게 약화됨으로써 각종 비경제적-사회적 불이익이 커진다고 보았다. 19세기에는 국가 간 생산성 격차가 컸으므로 자유 무역의 경제적 이익은 컸던 반면, 자본의 이동성은 그리 높지 않아 자유 무역에 따른 사회적 불이익은 크지 않았고, 따라서 자유 무역이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국가 간의 기술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도 대신 자본이 국경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상황은 반전된다. 이제는 자유 무역에 따른 경제적 이익과 비경제적 불이익의 저울질이 불이익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케인즈는 국가 간의 경제적 연계를 극대화하자는 사람들보다는 극소화하자는 사람들에게 더 공감하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유명한 발언도 현실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전환 속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사상과 지식, 예술과 친절 그리고 여행은 그 본성상 국제적이 되어야 하지만,

  물건은 가능한 한 국산품이 바람직하며, 특히 금융은 국내에 기반을 둔 것이어야 한다.

[예일 리뷰](1933년 여름호) {자족적 국민경제}



이번 한미 FTA의 핵심 중 하나는 미국인들의 국내 투자를 보다 쉽게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상대방 국가에 투자했다가 정부 정책으로 손해를 본 투자자가 그 나라 정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투자자-국가소송제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mechanism)'의 도입이 대표적인 예이다. 케인즈가 한미 FTA 협정문을 보았다면 아마도 이 조항을 가장 우려했을 것이다. 그가 금융은 국내에 기반을 둔 것이어야 한다며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반대했던 첫 번째 이유는 정부의 정책 수행 능력이 약화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국민 경제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 수행되는 정부의 정책은 자본의 수익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면 자신에게 불리한 정책이 펼쳐질 경우 즉각 해당 국가를 이탈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자본 탈출이 대규모로 일어나면 국민 경제는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한다. 따라서 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경제에서 정부는 이러한 사태를 우려해 쉽사리 정책을 펼칠 수 없게 된다. 케인즈의 입장에서 보자면,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자본의 높은 이동성으로 가뜩이나 정부의 정책 수행 능력이 제약된 상황에서 정부의 손발마저 묶는 고약한 제도인 셈이다.


한미 FTA를 추진했던 가장 큰 명분은 미국 자본과의 경쟁을 통해 국민 경제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 경제에 폐쇄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낙후된 곳이 있다면 시장을 개방해서라도 '경쟁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통해 낡은 환부를 도려내 새살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케인즈라면 '개방을 통한 개혁'이라는 견해에도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 경제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의 외부의 개입을 통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며, 장기적으로 볼 때 그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케인즈는 경쟁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경쟁이 경제를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절히 제약되지 않은 무한 경쟁은 인간을 승자의 탐욕과 패자의 불안으로 가득 찬 약육강식의 정글로 몰아넣을 뿐 아니라, 수단이 목적을 지배하는 전도된 반윤리적 사회를 낳는다고 생각했다. ...... 그리고 케인즈는 경쟁이 사회를 위협하지 않고 경제적 효율을 달성하려면, 그에 걸맞은 사회적 안전망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서구 사회보장 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베버리지 보고서의 작성에 동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미 FTA는 한국 사회에 거센 경쟁의 압력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보호하고 다시 경쟁의 장으로 복귀시킬 사회적 안전망과 교육 훈련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 완충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격화되는 경쟁은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 것이다.


케인즈는 국민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도 제도나 관습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믿었다. 대다수의 경제주체들이 일상생활에서 연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고 이 믿음에 근거해 다양한 경제 활동을 벌일 수 있는 것은 행동의 준거가 되는 제도와 관습들이 앞으로도 지속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 계약의 자유와 시장의 유연화 등 경쟁 원리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미국식 자유시장 제도는 신속한 구조조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연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해준다는 제도 본연의 기능이 약화됨으로써 장기적인 투자나 숙련 제고를 방해한다.


하략


 
저자가 케인즈의 대변인이나 케인즈주의자의 대표는 아니니 같은 케인즈주의로 묶이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반론을 펼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 특히 범노무현 지지 진영에서 말이다. 노무현 지지자들은 저 '개방만이 진리'라는 명제를 되뇌이며 피해계층에 대한 보완-지원책을 마련하면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무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관해선 아직 듣지 못했지만.

나는 저 글에서 열거한 이유들에 더해 힘의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타의 국가들과는 차원이 다른 미국의 힘, 그리고 한미 FTA를 통해 이득을 얻을 사람들과 피해를 볼 사람들의 힘의 차이 말이다. 농민을 비롯한 피해계층에게 무엇을 지원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수혜를 입게 될 대기업들이 십시일반해 농민을 돕자고 말하던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일단 기업들은 내켜하지 않을 게 뻔하다. 그렇담 노무현의 모든 것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다 한미 FTA에 관해서만큼은 '구국의 영웅'으로 치켜세우던 보수언론과 인사들은? 그들이 바라던 FTA와 자유경쟁은 피해자와 약자를 지원하고 배려하는 그런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패권을 더욱 강화하는 것인가? 미국의 해당산업과 기업은 그걸 두고 볼까? FTA가 시행된다고 해도 양국의 비관세 장벽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히 마찰이 생길텐데 그 때 제도와 규칙을 바꿔야 하는 쪽은 어디겠는가? 한국의 기업이 미국의 제도와 규칙을 바꾸는 경우가 많을까, 미국의 기업이 한국의 제도와 규칙을 바꾸는 경우가 많을까? 그때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누구이겠는가.







+
여전히 한미 FTA에 반대하지만, 한편으로는 좌파진영의 경제학자와 정치가들은 이젠 비준 이후 시나리오와 대비계획들을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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