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역사

길은 복잡하지 않다

planet2 2010. 3. 2. 02:11

이갑용, "길은 복잡하지 않다", 철수와 영희, 2009


제목과는 다르게 노동자 이갑용이 걸어온 길은 쭉뻗은 탄탄대로가 아니라 굴곡의 연속이었다. 민주노조 운동에 동참한 그의 길엔 회사, 어용노조, 경찰, 정부, 노동계 내부의 정파이기주의라는 장애물들이 가득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쫓기다 골리앗 크레인까지 올라가 보지만 달성하고자 했던 목적은 이루지 못하고 언제나 쓰디 쓴 분루만 삼켜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늘 패배하면서도 민주노조는 성장한다. 이갑용 역시 평조합원에서 노조간부로 거대기업 노조위원장과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그리고 광역시의 구청장으로 신분이 상승한다.

이런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책에 의하면 유혹과 탄압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원칙을 지키며 운동을 한 것이 그 비결이다. 동료 노동자들은 우직하게 한 길을 걷는 그를 신뢰하고 지지했으며 그런 지지를 발판으로 이갑용은 노동운동의 상층부로 올라갔다. 그렇다면 그의 원칙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투쟁'이라고 말 할수 있다.

 고용은 악화되고 조직된 힘은 약해졌는데 정권은 오히려 보수로 회귀한 상황이 노동자들이 지금 맞닥뜨린 현실이다. 이 최악의 상황을 뚫고 나갈 길은 결국 노동조합에 있다. 그런데 노동운동의 활동가들이나 민주노총의 간부들마저도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확신 없이, 임금 동결이나 고통 분담을 외치는 게 현실이다. 투쟁만이 살 길이라고 말하면 무슨 좌익 소아병자 대하듯 공격하고 강경파니, 좌파니 매도한다. 비타협적인 투쟁을 주장하는 것은 좌익 소아병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도 늘 비타협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식의 조롱을 받았다. 정세도 모르고, 자기 고집만 세며, 세상을 보는 눈은 떨어지면서 헛된 구호만 남발하는 몽상가 취급을 받아왔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비타협적인 투쟁을 주장한다고 해서 협상이나 대화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데도, 이런 식의 공격은 광범위하게 동의를 받는다. 비타협적인 투쟁에 나서기 싫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고통 분담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노동자가 자본가와 왜 싸우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는 관료화된 노동자들이 지도급의 간부로 앉아 있으니 자본가들은 점점 약해지는 우리를 보며 비웃을 수밖에 없다. 서로 공정하고 동등한 관계에서 주고받는 고통 분담이라면 꼭 못할 말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과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를 외면한 채, 우리가 임금 동결을 하겠으니 너희도 양보하라는 식의 고통 분담 발언은 자본과 정권에 노동자를 팔아 넘기는 행위이다.

 
"힘이 있어야 타협도 가능하고, 힘은 투쟁으로부터 샘솟는다. 투쟁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교섭 수단이다." 옳은 말이다. 옳은 말인데... 누군가 내게 "그렇담 그 잘난 투쟁 니가 한 번 해볼래"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러마"라고 답하지 못 할 것이다. 욕먹고 얻어맞고, 해고되고, 옥살이하고, 엄청난 빚까지 지고, 나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극도로 고통받는 그런 투쟁, 나약한 나는 선뜻 나설 수 없고 따라서 누구에게 권할 수도 없다. 물론 "앞서서 나간" 사람들을 응원하겠지만.

80년대처럼 지배의 부당함과 폭압성이 뚜렷하지도 않고 임금과 노동환경도 그만큼 열악하지 않거니와 풍부한 '산업예비군'과 자녀 교육 등의 부담이 훨씬 높아진 지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나설 간 큰 쥐가 몇이나 될까. 눈에 보이지 않는 폭압의 강도는 오히려 훨씬 더 세졌는데... (쌍용차 위원장에게 4년을 때리다니, 80년대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데. 이 씨X새끼들.)

투쟁은 다수가 동참해야 가능한데 그게 안 되는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해야 타개할 수 있을까? 저자는 권력만 탐내며 노동운동의 위기를 불러온 정파의 해소와 노동자들의 계급적 자각을 혁신의 방안으로 꼽는다. 후자는 두 말하면 잔소리. 전자는 좀 아리송하다.

정치적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에 정파가 없을 수는 없다. 분파를 금지해도 비슷한 정견, 비슷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결국 뭉치기 마련이다. 정파를 없애자고 하면 그것이 없어질까? 한편 저자 스스로 말했듯 이른바 범국민파로 불리는 노동운동의 우파세력이 권력을 잡았을 때 양적, 질적으로 심각한 문제들이 일어났다면 촛점은 거기에 맞춰야 하는 거 아닐까 싶다. 물론 저자는 여러 사람의 실명을 들며 민주노총 우파를 강하게 비판한다. 민주노총 내부의 정치에 관해 왈가왈부 할 수 없는 처지이지만 책을 읽고 국민파와 그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커졌을 정도다. 문제는 이와 동시에 정파를 없앨 걸 주장[각주:1]한다는 것. 한나라당의 폐해를 실컷 비판한 다음에 "다른 정당들도 이기적인건 마찬가지고 이런 거 있어봤자 도움 안 되니 정당들 죄다 없애자"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납득이 가질 않는다.

뭐 종교경전도 아니고 만사형통의 해법이 책에 담겨 있을리는 없겠지. 그런 게 있었다면 이 모양 이 꼴도 아니었을테고. '해법'은 두고두고 생각해 볼 일인데, 주장과는 별개로 이 책이 담고 있는 여러 사실들은 고민을 위한 자료로 활용할만 하다. 사측의 노조활동가들에 대한 유혹과 탄압의 양상, 그로 인한 사태의 전개에 관한 기록, 협상전술 등은 실무지식으로써 가치가 있다. 이제 마악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나같은 사람이나 특히 신생노조의 실무자라면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가 이 시대의 가장 약한 이들 중 하나인 저임금-비정규직 중년 여성의 애환과 민주노총의 무기력을 다뤘다면,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는 가난한 여성 노동자가 80년대를 헤치며 겪은 역경과 주로 평조합원이 바라 본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에 관한 술회를 담았다. 이 책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시작한 대기업 정규직 남성들의 노동운동과 그들과 함께 성장한 민주노총의 역사를 담고 있다. 균형을 갖추고 사태를 입체적으로 보기 위해서, 다음번엔 이른바 '학출'이며, 전노협과 민주노총 운동, 진보신당의 역사까지 함께 한 정파소속 활동가의 책이 나와줘야 겠다.



  1. "내부 정파 갈등이란 근본적으론 별 차이 없는 정파들이 서로 반목을 하면서 현재의 구도를 만들고 지키는 것에만 급급했습니다. 그러니 운동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이런 무기력한 현실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정파부터 없애고 조직을 선순환 시켜야합니다. 이게 급선무입니다."

    프레시안 인터뷰 - 노동을 배반하는 정치경제에 대한 분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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