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야구

1987년의 야구

planet2 2007. 1. 31. 00:33

요즘들어 한겨레엔 ‘87년을 성찰하고 반성해 새롭게 도약하자’는 주장이 담긴 기사가 심심찮게 실린다. 20년 전 이 나라엔 큰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 때 나는 국민학생. 어린이다운 삶에 충실했던 것 같다. 무언가 뒤숭숭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린이들의 고민 리스트엔 ‘고문치사’나 ‘독재타도’ 등의 용어는 없었다.

모든 게 변변치 못했던 서울 변두리엔 최루탄 냄새도 찾아 들지 않았지만, 당시의 시국은 야구장에도 미묘한 기운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새삼 야구란 얼마나 변수가 많은 스포츠인지 느끼게 된다.


아래는 작고한 이종남 기자의 저서 ‘한국 야구사’에 나온 당시 풍경.

스탠드에 분 민주화 바람

'6•29 노태우 선언'을 몰고 온 민주화 운동은 프로야구장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관중들은 마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와 같은 양상으로 홈 구단 선수들의 졸전, 원정 팀의 승리, 심판판정에 대한 불만 등에 대해 집단소란 행위를 벌였다. 1987시즌 중 관중들의 빈 병 투척 등으로 경기가 중단된 사례는 40여 회에 달했다.

관중소란 행위가 가장 심했던 곳은 부산이었다. 4월 12일 원정 팀 해태가 롯데를 6-2로 꺾자 한 취객이 해태 덕 아웃으로 난입, 선수들과 치고 받는 난투극을 벌였으며 이에 따라 해태선수들은 흥분한 관중들에 포위돼 1시간 이상 경기장을 빠져 나가지 못했고 롯데 허구연 코치 등 선수단이 가진 승용차 몇 대가 부서지는 불상사가 빚어졌다.

사직구장의 일부 관중들은 롯데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기를 했을 때 경기장 앞에 진을 치고 성기영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을 성토하거나 유리창 등 기물을 파괴한 사례가 9차례에 달해 롯데 구단은 5백여 만원을 운동장 측에 변상해야 했다.

민주화 요구가 절정에 달했던 6월 말(27일) 광주에서 벌어질 예정이던 해태-빙그레전이 시국과 관련돼 취소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이 게임을 비공개로 소화해버리자는 비상식적인 발상을 내놓기도 했으나 심판진이 철수하는 바람에 무관중 경기는 성립되지 않았다.

해태-OB의 플레이오프전, 해태-삼성의 한국시리즈 등이 벌어졌던 전주, 광주구장에서는 관중들이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연호하는 등 관중석이 정치색에 물들기도 했으며 이런 것은 관중소요와 함께 사회 분위기와 관련된 사항들이었다.


관중소란 빈발

민주화운동의 물결을 타고 1987년부터 심해지던 관중들의 장내소란은 1988년에 한결 과격해졌다. 급기야 1988시즌 전기리그에서는 관중들의 심판폭행, 관중사망 등의 불상사가 일어났다. 대표적인 관중소란사고는 다음과 같다.

▲4 월 9일 부산=전날 개막전에서 장호연의 노히트노런으로 홈팀 롯데를 울렸던 OB는 이날도 8회까지 3-1로 리드 당하다 롯데 김종석(金宗奭)이 9회초 포볼 2개와 보크를 범하면서 갑자기 난조에 빠진 틈에 3안타를 집중시켜 4-3으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에 흥분한 관중들은 경기가 끝난 뒤 OB 구단버스를 둘러싸고 돌팔매질을 가해 4백만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5월 18일 인천=전날 여태구(呂泰九)의 9회말 끝내기 2루타로 4-3 승리를 거두며 해태의 12연승을 저지했던 태평양은 이날 경기초반 5-1로 뒤지다 4회말 일대 반격으로 5-5 동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해태가 이상윤을 내세워 경기종료까지 1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5회부터 매이닝 득점(8회 제외)으로 11-5로 점수를 벌려나가자 화가 난 인천관중들이 투석으로 경기진행을 방해, 9차례에 걸쳐 25분간 경기가 중단됐다.

▲5월 19일 대전=이날 경기는 김성한이 5회초 2-2의 균형을 깨는 솔로홈런을 터뜨려 해태가 5-3으로 이겼다. 그런데 김성한은 관중들이 야유를 보내자 주먹으로 음란한 제스처를 취해 관중들을 더욱 흥분시켰다. 그러다가 6회초 서정환이 2루앞 내야안타로 살아나가자 관중들이 세이프 판정에 항의하며 빈병을 집어던지기 시작하더니 그라운드로 난입, 박민규(朴玟奎) 등 심판진에 폭행을 가했다. 이에 모심판이 발길질로 응수하자 순식간에 관중 100여명이 그라운드로 난입, 56분간 경기가 중단됐다.

▲5월 25일 마산=이날 롯데-빙그레의 전기 8차전에서 빙그레는 장종훈이 4타수3안타 3타점을 올리는 수훈을 세워 홈팀을 5-2로 꺾었다. 패색이 짙어진 롯데의 9회말 공격이 진행될 무렵 관중들이 빈병을 무더기로 던지기 시작, 백대삼(白大三) 주심은 양팀을 철수시킨 뒤 장내방송을 통해 "빈병투척이 계속될 경우 홈팀 롯데의 몰수경기를 선언하겠다"고 1차경고를 내렸다. 이에 관중들의 빈병투척은 더욱 기승을 부렸고 때마침 운동장 밖에서 데모대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쏜 최루가스가 바람을 타고 경기장 안으로 날아드는 통에 관중석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관중들은 이번에는 최루가스 발사에 항의하며 소동을 벌였고 양팀 선수는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창고로 피신해야 했다.

▲5 월 31일 부산=이날 라이벌 해태와의 경기에서 롯데는 8회말 7득점에 성공, 8-4로 승리를 내다보다가 9회초 일거에 5점을 빼앗겨 9-8로 역전패당해 한 관중이 쇼크사(급성 심부전증)하고 관중들이 던진 빈병에 12명이 부상하는 최대의 불상사가 빚어졌다. 2만7천여 관중은 이날 경기에서 3회까지 안타수 6-1의 우세 속에 1-0으로 리드를 잡고 있던 롯데가 4회초 김준환의 2점홈런 등 집중타를 얻어맞고 4점을 빼앗기자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어 6회말 롯데 김민호가 친 커다란 타구를 해태 중견수 이순철이 담장까지 따라가 잡는 순간 그를 표적으로 삼아 빈병과 깡통이 무수히 날아들어 경기가 중단됐다. 이때 해태 김응룡 감독은 "선수부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경기를 할 수 없다"며 선수들을 덕아웃으로 불러들여 10여분간 경기가 중단됐다. 장내방송을 통해 자제를 호소하고 경기를 가까스로 속행했으나 해태가 득점찬스를 맞을 때마다 빈병소동은 잇달았다. 역전을 거듭한 끝에 결국 롯데가 9-8로 역전패하자 관중들의 흥분은 극에 달해 빈병소동에 많은 부상자가 나왔으며 양팀 선수는 경찰의 호위 속에 간신히 몸을 피신했다.

관중소란상태가 심각해지자 이웅희 총재는 6월 1일 담화를 발표, "최근 빈발하고 있는 프로야구경기장 관람질서의 극심한 해이는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이 경우 불상사의 미연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밝혀둔다"고 밝혔다.

최악의 잠실관중난동

야구장 관중소요는 홈팀의 성적이 나쁠 때마다 심심치 않게 일어났지만 1990년 시즌에는 더욱 극성을 부렸다. 더구나 8월 26일 잠실구장에서는 홈팀도 아닌 방문팀을 응원하는 관중들이 단순한 소동이 아닌 난동을 벌여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1990시즌의 주요 관중소동을 살펴본다.

▲8월 26일 잠실구장=LG­해태의 경기 도중 관중 1천여명이 그라운드로 뛰어들어 관중끼리 패싸움을 벌이는 등 최악의 관중소란이 일어나 경기가 1시간7분간 중단됐다.

방문팀 응원관중의 경기장 난입으로 경기가 중단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며 1986년 10월 22일 한국시리즈 3차전이 벌어지던 날 대구구장 해태구단버스 방화사건에 이은 최대의 난동으로 기록됐다.

3-0 으로 앞서가던 LG가 7회말 7점을 추가, 승부가 완전히 기울어지자 해태의 8회초 공격 직전인 하오 9시12분께 3루측 관중들이 그라운드 안으로 밀려들기 시작, 군중심리에 휩싸여 순식간에 1천여명으로 불어나 외야펜스 광고부착물과 베이스를 뜯어내고 술판을 벌이고 불까지 지르는 추태를 벌였다. 이때 1루측 LG 관중 1명이 뛰어내려와 해태응원관중의 뒷머리를 철제의자로 내리치는 통에 양측 관중 사이에 패싸움이 벌어졌다.

관중난동이 시작된 지 36분만에 무장경찰 3개중대가 투입돼 그라운드에 난입한 관중을 스탠드로 돌려보내고 10시19분부터 경기를 속행했다. 결국 이 경기는 LG의 13-1 승리로 끝났다.

이날 소동으로 10여명의 관중이 부상했고 소요주동자 19명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5월 29일 대구구장=이만수가 경기 도중 관중석에서 날아든 빈 깡통을 도로 관중석으로 던지자 흥분한 관중들이 경기가 끝난 뒤에도 스탠드에 남아 불을 지르고 오물을 투척했다. 경찰이 장내로 들어와 최루탄을 터뜨려 해산시켰다.

▲6월 7일 마산구장=LG-롯데전 도중 술에 취한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몰려들어 술판을 벌이고 야구흉내를 내는 추태를 보였다.

▲7 월 12일 잠실구장=LG­롯데전이 끝난 하오 9시30분께 롯데의 대패에 흥분한 관중들이 롯데 선수단에게 청문회를 요청하면서 충돌, 1시간 동안이나 대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목격자들은 일부 롯데 선수들이 관중을 버스로 끌고 올라가 구타했다고 주장했다. 관중들끼리 치고받는 바람에 김경철(32)이 맥주병으로 옆구리와 팔꿈치를 찔려 병원에 입원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7월 28일 사직구장=롯데가 삼성전에서 패하자 흥분한 관중들이 경기장 유리창을 부수고 기물을 파손하면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날 소동으로 7명이 구속됐다.

▲8월 25일 인천구장=롯데­태평양 인천경기가 끝난 뒤 관중들이 롯데 구단버스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는 등 2백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 지금 이런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몹시 불쾌할 것 같은데 당시 야구장 풍경을 되돌아 보면 가끔은 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그라운드에서 술판이 벌어지고 1000여명 사이로 난입한 1명의 관중이 벌이는 활극이라니!!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겠지만 얘깃거리가 많다는 건 야구의 매력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