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싫은 것들

planet2 2007. 2. 27. 23:33



1.

월초에 친구들을 만나러 약속장소인 광화문에 갔다가 황우석 지지자들의 시위를 보았었다. 형형색색의 커다란 깃발들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사람들을 보니 학기초만 되면 어딘지 모를 곳으로 출정 하겠다며 모이던 쇠락한 운동권 학생회의 집회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저 사람들 틈만 나면 ‘친북좌빨’ 들을 씹어대면서도 주사파들 하고도 잘 어울렸었지. 거참 묘한 관계로세. 시간이 없어 금방 지나갔지만 이런저런 생각이 스쳤었다. 그리고 재작년에 조선일보에 실렸던 글이 기억났다. 아래의 칼럼을 보자.

[조선닷컴에서 김대중 칼럼으로 검색해보면 이 글은 안 나온다. 웃기다]

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512/200512050378.html

걸핏하면 좌파를 선동적이라고 비난하던 1등 신문의 고문께서 쓴 글을 거칠게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님들아, 지금 우리 완전소중 황우석 박사를 괴롭히고 네티즌들한테 엄한 소리 하는 애들 죄다 좌파 거든염. 걔들 전부터 꼴 보기 싫었는데 이 기회에 좀 때려 잡아주심 안 될까염?”

사태 전반에 관한 통찰은 없고 이 기회에 자신들의 진영논리 장사로 한탕 해보려는 속셈만 보인다. 비열하다.

난 조선일보를 혐오한다.

2.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다며 ‘싫어’ 타령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소심한 나는 그들의 ‘싫어’ 목록에 내 이름이 오르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다 보니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면 더 소극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마음을 터놓지 못한다. 기분 안 좋잖아. 크게 해가 될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나를 싫어하게 된다면.

자주 가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나는 XXX가 싫어요~’ 포스팅이 줄줄 달린 모습을 본적이 있는데 그때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싫은 게 많은 거, 난 그게 싫다.

무언가를 싫어하게 되면 예상외로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 시간과 정력을 좋아하는 것들에 쏟는 게 나 자신을 위해서 생산적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자기애나 자존심을 이것저것 싫어하는 방식으로 내보이고 싶은 사람도 아니다. 상대방을 위축시키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가급적 누군가를 싫어하지 않으려 한다.

나를 둘러싼 사회환경에 관한 논의를 흥미롭게 지켜보면서도 어지간하면 논쟁에 뛰어들지 않는 것도,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그럴만한 식견이 없어서 이지만 논쟁의 과정에서 흔히 겪는 감정과 시간의 소모를 피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최소한 상대를 전면부정 하지는 말자고 다짐을 해도 나라는 소인배는 결국 ‘욱’해서 날뛰기 일쑤. 저리 좀 꺼져줬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사람이 있다.

뜯어보면 상대방의 치부로 자신의 치부를 가리는 치졸한 물타기와 반대파에 대한 이죽거림뿐인 내용을 허영이 가득한 문장으로 흐리는 사람이 싫다. 사실과 거짓을 교묘히 뒤섞고 윤색해 엉뚱한 틀로 찍어내는 사람이 싫다. 기만적 언술을 집요하게 구사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 싫다. 조선일보 같은 사람 말이다. 같은 내용을 독립신문이나 지만원 같은 이들이 말한다면 간단히 무시할 수 있다. 정말 대책 없는 사람들 말고는 누가 저들에게 신경 쓰는가. 하지만 그들의 말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눈에 보이면 그 꼴을 잠자코 보기 힘들다. 저항감이 솟는다.

공정한 경찰관을 자임하는 사람들은 조선일보나 조선일보식 언술을 하는 자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라고 주문한다. 개별 건에 대해서만 논의하고 다른 관점을 보호하는 미덕을 발휘하라고 한다.

글쎄… 지속되는 뻔한 의도를 비판하는 것이 편견일까. 집요한 악의를 외면하는 것이 공정한 것일까. 모르겠다.

다른 관점의 보호는 그 자체로 당연한 거지 미덕은 아니다. 안드로메다인의 관점이건 지구인의 관점이건 말 같은 소리를 하고 말되는 소리를 하면 누가 뭐라겠나.

여태 중언부언 했는데 하고 싶었던 말은 한 마디로 ‘그럴듯하게 거짓말 하는 것들이 싫어요’ 라는 거다.

마르크스는 딸들과의 문답 중에 가장 혐오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노예근성’이라고 답했다지? 나 역시 노예근성을, 번지르한 말로 그걸 주입하는 자들을 혐오한다. 어쩌면 내가 노예라서, 그래서 더 기분 나쁜 것일 수도 있다.


이왕 이야기했으니 싫어하는 태도에 대해 좀 더 말해보자면,

극언을 쉽게 하는 것 : 삶의 쓴맛은 니들만 맛본 거 아니다.

픽픽 냉소 날리면서 이쪽저쪽을 손가락질 하기 : 누군들 그렇게 할 줄 몰라서 안 하나.

천박한 현실론자들 : 상황의 개선 혹은 발전을 위한 방법으로써 현실론을 강조하는 건 인정할 수 있는 태도지만 세상만사를 추악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현실론은 역겹다. 어쩌라구? 그냥 주욱 이대로 살다 뒈지라구?

"~ 라고 생각하는(느끼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인가?" 라고 묻는 것 : 설마 혼자는 아니겠죠. 그런데 지금 "쪽수" 자랑 하는 건 아니죠?

나와 닮은 것들 : 이건 그냥 싫다.